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보면 고등학생 시절 나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것 없이 주어진 일상에 맞춰 무던히 살아가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학생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난 담임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그 당시 전도유망한 보건과 공학이 융합된 한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평소 성적보다 낮은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대학 공부를 따라가는 것은 비교적 수월했다. 학과에 대한 큰 기대나 비전은 없었지만 그럭저럭 다닐만 했고 당시엔 4년제 대학 졸업장만 따면 된다는 고지식한 사고방식에 갇혀 스스로에게 더 이상 진전할 기회 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공과 관련된 당시 조건이 좋았던 회사에 입사하였다. 동기나 후배들은 그 회사가 학부생은 잘 뽑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입사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살짝 시기하는 동기도 있었다. 하지만 난 7개월 만에 퇴사를 하였다. 7개월 동안의 첫 사회생활도 무척 고되고 힘들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7개월 밖에 버티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생각에 휩싸여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뻔질나게 나가 놀았던 내 모습과 상반된 모습을 본 동생이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내게 "누나 돈 없어서 안 나가는거야? 이거 써."라며 내게 5만원을 쥐어 주었다. 그 순간이 참 고마웠다. 이래서 형제가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형제애를 난생 처음 느낀 순간이랄까.
하지만 5만원이 없어서 나가지 않았던 게 아니었던 나는 그 돈을 쥐고도 집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 그 일을 하는 것도 막막하기만 했다. 내가 원했던 직장생활은 그게 아니었는데..
특별히 갖고 싶은 직업은 없었지만 회사 생활에 대한 나만의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근무 시간엔 열심히 본업에 충실하고 퇴근하면 평소 배우고 싶었던 걸 배우거나 사람들과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내 첫 직장 생활은 그것과는 큰 거리감이 있었다. 나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부서 안에서 기획 업무를 하는 파트에 있었는데 오전 8시면 출근해서 오후 8시에 퇴근하면 그날은 일찍 끝난 날이었다. 그렇게 일찍 끝난 날이면 부서 선배들과 함께 11시, 12시경까지는 호프집에서 술을 마셔야 했다. 원해서 간 날은 단언컨데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런 날이 아니면 보통 밤 10시쯤 퇴근을 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숙소에 들어오면 늘 인사팀, 해외영업팀 언니들은 이미 운동도 하고 까페도 다녀와 침대에서 영상을 보거나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업무가 다르니 당연한 것이지만 7개월 내내 그런 생활을 하는 게 23살이었던 나에겐 앞으로의 퍽퍽한 삶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아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퇴사 후의 삶은 몸은 편해졌지만 실패자라는 생각이 너무 크게 들어서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시절이다. 그제서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찾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다음 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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